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헷필드 (문단 편집) === 보컬 === 결성 초기 제임스의 보컬 기량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가 즐겨 들었던 [[다이아몬드 헤드]]의 보컬 숀 해리스의 모창에 가까운 타입의 보컬리스트였고, 발성과 음역대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제임스가 보컬과 기타를 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 메탈리카는 아머드 세인트(Armored Saint)의 보컬리스트 존 부시에게 가입을 제안했는데, 부시가 거절함에 따라 제임스가 계속 보컬을 맡게 되었다.[* 반면 제안을 받았던 존 부쉬는 후에 조이 벨라도나의 탈퇴로 인해 보컬 파트의 공백으로 앤스렉스의 보컬리스트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앤스랙스 팬들에게 밴드를 말아먹은 1등 공신으로 원망을 받게 된다(...). 사실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 존 부쉬가 메탈리카 30주년 공연에서 메탈리카의 the four horseman를 커버한 적이 있다. 평은 앤스랙스 곡 커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1~2집, 즉 결성 직후인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제임스의 보컬은 천천히 다듬어져 갔다. 초창기에는 자신이 녹음한 음역대를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해 적당한 비명으로 대체했으며 숨이 차면 대충 넘기고 부르기 좋은 부분만 신나게 부르는 '가라오케 메탈 밴드' 수준에 그쳤는데, 2집인 1984~1985년 기간에는 페스티벌의 낮시간대 라인업이나 선배 밴드의 오프닝에 걸맞는 보컬을 보이기 위해 좀 더 정확한 음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3집 시기에 이르러 인디 밴드의 색채를 벗기 시작한다. 1986년 3집 발매를 전후로, 특히 3집 투어를 기점으로 오늘날 흔히 말하는 제임스의 보컬의 전성기가 열린다. 1986년부터 1991년, 더 길게 잡으면 1993년경까지를 전성기로 잡는데, 이 시기 제임스는 생목으로 트윈기타의 디스토션을 잡아먹는 절정의 성량을 자랑하며 메탈 보컬의 아이콘이 된다. 이 시기를 찍은 프로캠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데, 수많은 팬캠과 1993년 라이브 앨범 <[[Live Shit: Binge & Purge]]>의 1989년 공연 파트를 통해 그의 전성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전성기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 3/4/5집에 해당한다. 3집 시기는 2집과 4집의 과도기로, 2집에 비해 자신의 음정을 정확히 통제할 수 있게 된 한편 여전히 어린 티가 나는 보컬과 슬슬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파워풀한 보컬의 사이 어딘가의 유니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4집 시기는 포효하는 사자 같은 보컬을 마음껏 뽐내던 시기로[* 이 당시에 수염을 기르면서 비주얼적으로도 변화했고, 우렁찬 보컬과 함께 제임스 헷필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3집으로부터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어린 티가 사라진다. 5집 시기는 무리로 인해 서서히 목이 탁해지는 경향을 보이나 밥 록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의 곡들을 선보이며 소화 가능한 음역대를 크게 확장했고, 음정을 가장 정확히 짚을 수 있었으며, 팝 감각이 있는 멜로딕한 곡들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균형잡힌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때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는데, 다름아닌 성당 성가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성가대에 가입하면서 소위 "아→아↗아↘아→"부터 시작해서 본인의 단점과 장점을 살리면서 계속 그 역량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결과 환갑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기복이 없는 보컬 실력을 보여준다. [youtube(R22xm1PTBL8, start=100)] 1991년 Harvester of Sorrow 라이브. 1994년, 제임스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며 보컬 역량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0년 5집 녹음 작업을 하면서 목을 풀지 않고 노래를 한 탓에 성대 결절[* B-Side로 수록되었으며 후일 [[Garage Inc.]]에 수록된 을 녹음하는 중에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생겼는데, 이후 5집 [[Metallica(음반)]]의 대히트로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총 300회에 달하는 3개의 투어('Wherever We May Roam Tour', 'Guns N' Roses/Metallica Stadium Tour', 'Nowhere Else to Roam')를 소화하며 목에 큰 무리가 온다. 1992년 [[샌디에이고]] 라이브에서부터 이미 목소리가 탁해지기 시작하며 어떻게든 이전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쥐어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1993년에 이르면 1980년대의 맑은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 결국 제임스는 1994년부터 창법을 바꿔 생목을 긁는 구간을 점차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호통치듯 질러대던 구간에서 좀 더 팝 감각이 있는 걸쭉한 고음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다. 1995년 차기작 [[Load]]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스탠다드 E키로 연주하던 모든 곡을 한 키 낮춰 Eb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반음이 낮은 Load와 Reload, 키가 한참 더 낮은 Sad but True는 원키를 유지했다. Seek and Destroy는 아예 두 키를 내렸다가 2010년대 중반이 지나서 다시 한 키만 내린다.] 마침 Load에 E키 수록곡이 없었기에 악기 교체의 귀찮음도 덜고 원키에서 음이탈이 잦아지기 시작한 제임스의 보컬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Load]], [[Reload(메탈리카)|Reload]] 기간 동안 제임스가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음역대는 꽤 낮아진 편으로, 스크리밍 계열의 기법을 접은 대신 묵직한 흉성을 선보이며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의 수록곡에도 많은 고음이 담겨 있으나, 라이브에서의 음정은 매우 불안한 편이었다. 제대로 노트를 찍고자 노력하지만 목이 따라가지 못해 괴성이 튀어나오곤 했다. 1998~1999년은 투어 기간을 줄여가며 목을 관리했고, 대형 프로젝트인 [[S&M(음반)]]을 추진하여 좋은 결실을 맺었다. 한편 이러한 단발성 공연과 달리 이어진 투어에서는 계속 성량이 줄고 목이 악화되어 [[제이슨 뉴스테드]]의 백업 보컬의 힘을 더 많이 빌리게 된다. 2002년 재활원을 거치며 2003년 다시 투어를 나선 제임스의 보컬은 극적으로 힘이 떨어져 제대로 소화하는 곡이 하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목을 긁지도 못하고 고음을 뽑지도 못했다. 더이상 목에 아픈 곳은 없었으나 40대에 접어들며 젊은 시절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듯한 어정쩡한 라이브를 많이 했다. 2008년 9집 <[[Death Magnetic]]> 시기 제임스의 보컬은 이전에 비해 안정되어 악보대로 노트를 찍는 만큼의 기량은 되찾아냈다.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노린 무리한 작곡으로 음역대를 찍는 데에 급급하였을 뿐 제대로 힘을 실어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2009년 한 해 94회의 라이브를 소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메탈리카는 멤버들의 체력 안배와 삶의 질을 위해 투어 회수를 줄였고, 이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최대 30회 선의 공연만을 소화하며 공연 하나하나에서의 라이브 퀄리티에 더욱 집중하였다. 그 결과 2011년, 늦게 잡으면 2013년 경부터는 중년의 나이에 걸맞는 노하우를 제대로 습득하여 강력하게 끓어오르는 저음과 초고음의 스크리밍을 모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0집 <[[Hardwired... to Self-Destruct]]> 시기는 2002년 재활원을 퇴원한 이래로 가장 깔끔한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 평생 한 번도 레코딩대로 소화해 본 적이 없던 , 등의 옛 곡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신곡들은 현재 제임스의 보컬 음역대를 제대로 고려하고 쓰여 라이브와 레코딩의 갭이 그리 크지 않다. 한편 젊은 시절 라이브에서 음정을 많이 말아먹어 봉인했던 The Outlaw Torn과 같은 곡들은 몇 번 시도했다가 다시 --에비에비-- 파묻는 등 예나 지금이나 어떤 부분에서는 참 한결같다. 2017년 2월 3일 코펜하겐의 로열 아레나에서 공연하던 도중 관객들에게 “지금 목소리가 완전 맛이 갔어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아요. 평생 해온 일을 갑자기 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라 돌발적으로 말하며 공연을 연기할지 여부를 진심으로 관객들에게 물었고, 관객들은 NO를 외치며 열화와 같은 거부의사를 보냈다. 제임스는 공연을 끝까지 해냈고, 주치의는 당분간 단 한 음도 노래하지 말라고 진단했다. 5일의 공연은 9월 2일로 미루어졌으며, 그 다음 공연인 7일 공연부터는 정상적으로 소화해냈다. 2018년부터는 걸걸한 보컬톤을 되찾으면서 제 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때마침 수염을 기르면서, 수염이 제임스 헷필드의 본체라는 말이 농담삼아 팬들에게서 나오는 중. 좋은 퍼포먼스를 이어갔지만 알콜 중독이 재발하고 코로나 사태도 겹치면서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제임스 헷필드 정도의 나이를 먹은 록 보컬리스트들이 조금씩 목이 맛이 가고 회복이 안되는 와중에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 라이브에서는 반음을 내려서 연주한다.] 11집 발매 이전과 그 이후까지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드와이어드 투어 이후로 공연 횟수를 조절하면서 목 관리에 성공했으며, 근래 가장 안정적이고 힘있는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